fnctId=bbs,fnctNo=77 총 14 개의 게시물이 있습니다. 게시물 검색 제목 작성자 게시글 리스트 호국영령 무명용사碑 국립서울현충원은 1954년 3월 1일 국군묘지 착공을 시작으로 같은 해 10월30일 6·25전쟁 전사자 무명용사비를 최초로 건립하였다. 1955년 7월 15일 국군묘지로 창설된 이후 1956년 1월16일에 대표 무명용사 1위를 무명용사비 뒤편 반구형 봉안함에 안장하면서 “무명용사탑”으로 위상을 갖추게 되었다. 1967년 9월 30일 현충탑 아래 무명용사 봉안실을 건립하게 되어, 무명용사탑은 현재의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으로 이전하여 학도의용군 무명용사분들을 모시게 되었고, 현충탑 아래 위패봉안관 봉안실에는 6·25전쟁 전사자 대표 무명용사 1위와 묘역에 안장되어 있는 무명용사 5천 여위를 합장하여 모셔오고 있다. 국립서울현충원은 호국영령 무명용사의 거룩한 희생에 대해 최고의 예우를 다하고자 2021년 5월 21일 무명용사 봉안실 입구에 호국영령 무명용사비*를 건립하였고 묘비 후면에는 “국가를 위해 희생하신 호국영령 무명용사의 넋을 기리며 추모하기 위해 묘비를 세우다” 라고 새겨 넣어 국가를 위해 희생하신 호국영령 무명용사의 넋을 영원히 기리고 선양하고자 한다. *묘비 규격 : 가로 22.5cm, 높이 54.5cm, 두께 6cm, 상석은 가로 42.5cm, 세로 32cm, 높이 8cm 작성일 2022.07.29 작성자 현충원 조회 615 현충탑 현충탑은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는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추모하는 상징적인 탑으로 1년여의 공사 끝에 높이 31m 규모로 1967년 9월 30일 준공되었다. 화강암 돌붙임 공법이 사용되었으며, 위에서 내려다보면 십자형으로 되어 있다 이는 영현들을 동·서·남·북 4방향에서 수호한다는 의미를 나타낸다.현충탑 앞에는 오석 평판으로 된 제단과 향로, 향합대가 자리하고 있다. 제단 뒤쪽에는 이은상 선생이 짓고 박정희 대통령이 휘호한 현충시가 새겨져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여기는 민족의 얼이 서린 곳조국과 함께 영원히 가는 이들해와 달이 이 언덕을 보호하리라향로는 중간이 막혀 있다. 윗부분은 향을 피울 수 있고 아래 부분에는 6·25전사자 및 파월장병의 인식표를 넣었다. 향로 위 원형 테두리에는 국방부와 육·해·공군 및 해병대를 상징하는 마크가 조각되어 있다. 향로는 높이 80cm, 직경 80cm, 무게 300kg이다. 건군 2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국방부가 제작하였으며, 1968년 10월 1일 국방부 장관이 각 군 참모총장 및 고위 장성들을 대동하여 봉납하였다.향로 오른쪽에 놓인 향합대는 오석으로 만들어졌다. 전면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휘호한 '충혼'이란 글자, 양 옆에는 무궁화 문양의 조각이 각각 새겨져 있다.탑의 좌우에는 화강암 석벽이 펼쳐져 있다. 좌측 석벽 끝에는 5인의 애국투사상, 우측 석벽 끝에는 5인의 호국영우상이 각각 동상으로 세워져 있다. 현충탑 좌우의 석벽은 제사를 지낼 때 제상 뒤편에 쳐 놓는 병풍을 상징한다. 높이는 2.4m, 길이는 좌우 각각 23m다.우측 석벽 면에는 6·25전쟁, 4·19의거, 조국건설, 영광, 애도 등을 상징하는 조각이 정교하게 부각되어 있다. 좌측 석벽에는 항일운동, 8·15광복을 상징하는 조각이 역시 정교하게 부각되어 있다. 석벽에 표현돼 있는 이들 조각은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령들의 고귀한 위훈을 기리고 있다.현충탑 좌측 석벽 끝에 세워져 있는 애국투사 5인상은 국권 회복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모두 바친 순국선열들을 상징하고, 우측 석벽 끝의 호국영웅 5인상은 국토방위와 자유 수호를 위하여 용맹을 떨치신 육·해·공군과 해병대, 경찰 등의 용사들을 상징하고 있다. 높이는 모두 5.5m이다. 현충탑과 석벽의 벽면 부각, 동상 및 향로는 홍익대 최기원 교수가 설계·제작하였다.현충탑 아래 내부는 위패봉안관이 자리잡고 있으며, 중앙에 있는 영현승천상 아래 지하에는 봉안실이 설치되어 있다.2010년 3월부터 5월 사이에 현충탑과 부조벽 등을 세척하고 새롭게 코팅하여 단장하였다. 또 일반인 및 장애인의 출입 편의를 위하여 제단 앞면의 경사로를 우측에서 좌측으로 이설하고, 노후된 계단석판석을 통석으로 겨체하는 개보수 공사를 실시하였다. 작성일 2013.06.28 작성자 현충원 조회 18196 충열대 충열대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봉안되어 있는 애국지사, 임시정부요인, 무후선열들의 얼을 추모하는 제단이다. 1971년 11월 17일 '후손 없는 선열의 제단 건립위원회'가 국가보훈처의 지원을 받아 건립하였다. 독립유공자 묘역, 임시정부요인 묘역, 무후선열제단 등에는 대한제국 시절의 의병장을 비롯하여 3·1운동 민족대표, 항일무장 투쟁이나 계몽운동을 통하여 조국 광복을 위해 헌신하신 순국선열과 애국지사가 모셔져 있다.충열대는 높이 5.13m, 가로 4.84m, 폭 1.5m의 화강석에 용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그 좌우측 전방에는 높이 2.12m의 마신상이 세워져 있다. 대의 앞쪽 상단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휘호한 '민족의 얼'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으며, 뒤쪽 상단에는 이은상 선생이 지은 헌시가 아로새겨져 있다. 그리고 제단 앞에는 청동향로가 놓여 있다.조국과 겨레는 나의 사랑 나의 영광 나의 힘 나의 생명그를 위해 짧은 일생을 바쳐 그와 함께 영원히 살리라 작성일 2013.06.28 작성자 현충원 조회 5380 대한독립군 무명용사위령탑 국립서울현충원 임시정부요인 묘역 위쪽에 '대한독립군 무명용사 위령탑'이 설치되어 있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수많은 지사가 이름도 없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끊임없이 독립 투쟁을 하였다. 광복회에서 수많은 무명지사의 위훈을 기리고 넋을 위로하기 위해 국가보훈처의 지원을 받아 1년여의 공사 끝에 2002년 5월 15일 준공하고 2002년 5월 17일 제막식을 가졌다.이 탑은 부지 1,320㎡ 위에 가로 윗변 25m, 아랫변 24m, 세로 16m의 기단을 5단으로 하여 만들었다. 또한 좌대 부분은 반원의 형상으로 삼태극을 만들어 하늘을 나타냈다. 기단은 좌청룡 우백호의 부조 벽으로 병풍석을 만들고, 무명용사의 혼을 지키는 남녀 수호상을 기단 앞 양쪽에 형상화한 3개의 주탑이 세워져 있다. 각 탑의 높이는 1년 열두 달을 나타내는 12m를 기본으로 하여 마치 율동하는 것처럼 움직임의 변화를 보이는 16m, 그리고 12m와 16m의 중간인 14m의 세가지 크기로 조각하여 세월의 흐름을 조형으로 표현했다.제막식에는 이재달 국가보훈처장을 비롯하여 각계 인사와 재경광복회원 등 1,000여 명이 참석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풍찬노숙을 마다하지 않고 하나뿐인 목숨까지 내놓은 무명용사들이야 말로 역사의 진정한 영웅이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하였다.조국의 광복을 위해압록강 두만강 너머의남북 만주와 시베리아 험지에서때로는 중국 광야에서 조국 강산을 넘나들며일제와 싸우다 장렬히 산화한대한독립군 무명용사의 충훈을 이자리에 모시고영원한 명복을 비나이다. 작성일 2013.06.28 작성자 현충원 조회 5585 경찰충혼탑 국립서울현충원 경찰관 묘역(5번, 8번, 9번 묘역) 위쪽에는 경찰충혼탑이 건립되어 있다. 이 탑은 원래 부평경찰전문학교 교정에 있던 것을 1967년 5월 30일 현재의 위치로 이설하였으며, 1979년 5월 22일 중건한 것이다.이 탑은 면적 112㎡, 중앙 화강석 탑 높이 13m, 3인상 높이 3.5m, 좌우 동상 높이 3m, 벽면 폭 3.5m이다. 탑 하단 전면에는 이은상 선생이 지은 헌시가 새겨져 있으며, 탑신 중앙에 '경찰 충혼탑'이란 글씨는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휘호한 것이다. 탑신 중앙으로부터 양쪽으로 두 팔을 벌린 듯한 날개는 민주경찰의 따스한 보호를 나타내고, 탑신 하단에는 경찰 활동의 상징인 신·의·용의 3인상을 세워 경찰의 충성과 봉사정신을 나타냈다. 탑 좌측에는 애민상, 우측에는 호국상을 새겼다. 양쪽 날개 벽면에는 조국을 지키고 국민을 보호해 온 경찰의 위대한 업적을 조각으로 부각하였다. 입구 양측에 있는 호랑이상은 영령들을 수호한다는 의미가 있다. 여기는 우리들의 조국지나간 한때 어둠 속에 잠겼다가자유를 되찾은 광복된 나라온갖 방해 물리치고 나라를 세우려고고귀한 청춘의 피를 뿌린이 나라 건국 경찰들우리는 그들을 잊지 못한다또 다시 닥쳐온 고난과 시련민족을 반역한 북한 공산군잔악한 남침으로 일으킨 전쟁총탄 속에서 조국을 구하려고값비싼 청춘의 피를 뿌린이 나라 구국 경찰들우리는 그들을 잊지 못한다그리고도 밤낮을 이어 나라를 위해오직 자유 평화 정의를 지켜겨레의 안전을 보살피다엄숙하고 거룩한 사명앞에순결한 청춘의 피를 뿌린이 나라 호국 경찰들우리는 그들을 잊지 못한다여기는 순국한 님들 잠드신 곳장미꽃보다 더 아름답던 청춘그 청춘 그대로 누워 계신 곳육신은 풀 끝의 이슬처럼잠깐 왔다 갔을지라도뜻과 이름 길이 여기 살아 계시리강산과 역사와 함께 길이 사시리 작성일 2013.06.28 작성자 현충원 조회 3669 재일학도의용군 전몰용사 위령비 재일학도의용군 전몰용사 위령비는 장병 묘역의 16번 묘역(재일학도의용군 묘역) 앞쪽에 설치되어 있다. 1963년 11월 21일 일본 도쿄 다이교지(大行寺)에 안치되어 있던 50위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한 후 재일본 대한민국 거류민단에서 재일학도의용군의 고귀한 희생을 추모하고 그들의 넋을 추념하고자 1973년 6월 6일 건립하였다. 이후 1990년 12월 15일 개축하였다가 2009년 5월 15일 112㎡의 면적에 높이 170cm, 폭 250cm 규모로 재보수 건립되었다. (기존의 위령비는 재일학도의용군동지회에서 보존) 비의 뒷면에는 이곳에 안장된 재일학도의용군 50위와 장교 2위(17번 묘역 박두원 공군 대위, 15번 묘역 정달문 육군 중위), 위패봉안관에 봉안된 90위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 앞면에는 아래와 같은 헌시가 새겨져 있다. 내나라 구하려고 피를 뿌리신 젊은이들역사의 책장 위에 꽃수를 놓으셨네조국의 포근한 흙속에 웃으며 잠드옵소서 작성일 2013.06.28 작성자 현충원 조회 2661 육탄10용사현충비 장병 묘역의 6번 묘역 제일 앞줄에 안장되어 있는 육탄10용사의 넋을 기리고자 건립된 추모비이다. 6·25전쟁 당시 사단장인 김석원 장군이 앞장서고 개성 출신 독지가와 일반 유지들이 '육탄 10용사 현충비 건립위원회'를 조직한 후 국방부의 지원을 얻어 건립한 비이다. 1955년 3월 중순부터 기초공사에 들어가 4월 중순에 준공하였으며, 5월 4일 전몰 일자에 맞추어 제막식을 가졌다. 이 비는 최초 배롱길 위(솔내길 끝)에 세워졌으나 '육탄10용사 기념사업회'의 이전 건의를 받아들여 약 1개월간의 공사를 거쳐 2013년 9월 5일 육탄10용사가 잠들어 있는 6번 묘역 앞으로 이전하였다. 비의 높이는 6m, 폭은 상단 0.5m, 하단 2.3m, 바닥면적 89.8㎡이다. 하단의 기단석 위에 5층의 탑을 쌓은 듯한 형상으로 하여 아래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폭이 좁아진다. 제일 하단에는 비문, 그 위에는 ‘THE TEN BRAVE WARRIORS’라는 영문표기, 그 위에는 10용사의 계급과 성명 그리고 제일 상단에는 육탄 10용사 현충비라는 비명이 각각 새겨져 있다.비의 전면 중앙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새겨져 있다. 해방 이후 三八선으로 말미암아 국토가 분단되어 오던중 단기 四二八二년에 이르러서는 개성 서북방 송악고지에 공산 괴뢰군이 불법침입하여 방위가 불리하고 개성이 위태로우매 동년 五월 四일 제一사단 제十一련대 소속 서부덕 소위 이하 九명의 용사 화랑정신을 받아 조국애와 민족정기에 불타는 정열로 몸에 포탄을 지니고 적의 지하 참호 속에 뛰어들어 육탄 혈전, 적진을 분쇄하고 옥으로 부서지니 멸공전사상에 이룬 공과 그용맹이 널리 세계에 펴지다. 광음이 흘러도 잊음없이 명복을 빌고 그 영령을 추모하고저, 이에 눈물과 정성으로 현충비가 서나니 이는 조국수호의 정신을 청사에 새기고 만대에 전함이라 十용사의 영혼 불멸하여 겨레와 함께 살며 길이 빛나리로다. 작성일 2013.06.28 작성자 현충원 조회 2423 유격부대전적위령비 유격부대 전적위령비는 한국전쟁 중 북한지역 곳곳에서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유격작전을 전개하다가 산화하신 유격부대원들의 고귀한 희생과 빛나는 업적을 기리고 그 영령들을 길이 추모하기 위해 국방부 주관하에 1977년 5월 30일 준공하고 1977년 6월 2일 제작한 비이다. 동쪽 순환도로 입구 배롱길 위(솔내길 끝)에 있던 위령비는 노후화뿐만 아니라, 언덕에 위치해있어 참배객들의 불편을 초래하였고, 이를 개선하고자 2022년 6월 20일 동문 근처 평지로 개축 이전하였습니다. 비의 중앙에는 유격부대원들의 투쟁 모습을 그린 조각이 있고, 조각 위로는 당시 유격 부대원들이 쓰던 것과 같은 철모와 소총이 걸려 있다.비의 앞면에는 좌측에 유격부대 약사와 우측에 비문, 비의 뒷면에는 한국 반공유격대 참전부대명과 유격전 약사(略史)가 각각 새겨져 있다. 이 비는 철근콘크리트 골조에 화강석 판석을 붙여 건립되었다. 높이 4.2m, 폭 8.4m, 화강석 바닥 면적은 165㎡ 로 남산미술원 이일영 원장이 설계·제작하였다.유격부대 전적비의 비문은 다음과 같다.한국전쟁 중 자유와 평화를 위해 북한 지역 곳곳에서유격작전을 전개하다가 조국의 수호신으로 산화한유격 부대원들의 고귀한 희생과 빛나는 업적을 기리며그 영령들을 길이 추모하기 위해 여기에 이 비를 세운다.후면에 기록된 유격부대 약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유격부대 약사(1) 한국 반공유격대는 한국전쟁의 역사와 함께한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남침을 개시하자 북한 지역 및 38도선 접경지대에 거주하던 많은 청년과 학생들이 지하로 은신, 도처에서 반공투쟁 단체를 조직하여 무장 봉기를 감행하였다. 특히 950년 12월부터 1953년 7월 휴전이 이뤄질 때까지 동·서해 연안도서 및 내륙 지역에서 자유의 의병으로 유격작전을 전개하였다. 유격전에 참전한 병력은 무려 4만여 명에 달하였다. 이들은 공산군 1개 군단 이상을 견제하는 전략 가치가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1개 사단 이상에 해당하는 병력 및 장비에 치명타를 주는 한편 군사 정보 수집, 공수 특공작전, 조종사 구출, 동·서해 제해권 확보 등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이 부대는 휴전 후 국방부 제8250부대로 통합되었다가 1954년 2월 육군부대로 편입되면서 발전적 해체를 보았다.(2) 영도 유격부대는 동해 3도 출신 반공 청년들을 규합하여 유격대를 창설하였다. 부산 영도에 본부 기지를 두고 1950년 8월 부터 12월 5일 해체될 때까지 900여 명의 대원들이 공중과 해상으로 동해 내륙 북부지역에 침투, 적의 군사시설을 파괴하고 군사 정보를 수집·제공하는 한편 반공 애국자들을 규합 또는 구출하는 등 적의 군사 활동을 견제하거나 교란하는데 크게 공헌하였다.(3) 호림 유격부대는 한국전쟁 발발 이전에 육군 특수임무 부대로 편성되어 북한군의 남침 흉계를 사전에 분쇄하는 임무를 띠고 강원도 북부 지역에 침투, 한국 초유의 유격전을 전개하여 적의 군사 활동을 견제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작성일 2013.06.28 작성자 현충원 조회 1749 50년현지임관 전사자추념비 국군이 창설되고 초기에 자원입대하여 복무 중이던 군인들이 6·25전쟁이 벌어지자 많은 이가 현지 임관되었다. 이들은 6·25전쟁에서 많은 공을 세우고 나라를 지켜 냈으나 그들 가운데 377명이 전사하고 16명이 순직하였다. 세월의 흐름에 이들의 값진 희생이 잊혀여 가자 1950년 현지 임관 생존 회원들은 동기들을 영원히 추모하고자 국립서울현충원 내에 추모비를 세우기로 하고 성금을 모금하는 등 준비를 해 나갔다.마침내 1971년 9월 1일 기념비 건립에 착수하여 1971년 10월 20일 준공하고 '현지임관 전사자 추념비'라 이름 지었으며, 1991년 9월 26일 개축하였다. 비는 높이 7m의 탑 2개로 구성되었다. 아래쪽 기단은 폭이 6m, 바닥 면적은 21.5㎡이다.이 비는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 좌측 공원에 위치하고 있다. 비 전면에는 다음과 같은 비문이 새겨져 있고, 후면에는 전사자 명단이 새겨져 있다. 임들은 나라의 부름을 입어 창군하고순국으로 침략을 막아 청사에 그 충의를 새기니오늘은 겨레의 번영 내일은 조국의 통일을 보리라 작성일 2013.06.28 작성자 현충원 조회 1481 육사7기특별동기생추모탑 이 탑은 6·25전쟁중 구국전선에 뛰어들어 고귀한 생명을 바친 육사 7기 특별 동기생 전몰용사의 숭고한 넋과 거룩한 희생을 추모하고자 생존한 동기생들이 1963년 8월 17일 건립되었다. 1986년 10월 12일 개축하면서 탑 안에 동기생들의 유품과 기념품, 사진 등을 함께 봉안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탑은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 뒤편 공원에 위치하고 있다. 오석 기단 (높이 1.3m)위에 화강석 좌대(높이 0.6m)를 쌓고 좌대 위로 철근 콘크리트에 화강석 판석을 붙인 탑신(높이 6m)을 세운 후 탑신 꼭대기에 원형의 고리를 밟고 양팔을 벌린 채 늠름하게 서 있는 군인 동상(직경 3m)이 세워져 있다.탑 하단 전면에는 6·25전쟁 때 사용한 철모가 놓여 있고, 탑 후면에는 육사 7기 특별 동기생 203명의 명단과 헌시가 새겨져 있다. 헌시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오랑캐 무찌르며 돌진하던 그대들이 나라는 건져 놓고 저는 정작 못 돌아오고충혼이 한 줌의 흙으로 이 기슭에 누었나그대들 푸른 넋이 가슴마다 살아 있네.못 이룬 그 바램을 오늘도 되새기며아쉽고 그리운 정으로 돌 하나를 세운다. 작성일 2013.06.28 작성자 현충원 조회 1680 처음 12 1 2 다음 페이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