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번호
- 5235
제 54 묘역 소개
- 작성일
- 2018.05.14
- 수정일
- 2022.02.08
- 작성자
- 현충원
- 조회수
- 1585
개요 및 안장 현황
제54묘역은 6.25 전쟁중 전사자와 60년대 순직하신 분들을 모시기 위해 조성된 묘역으로 총1,173여위가 안장되어 있다.
연도 | 계 | '50년 이전 | 6・25전쟁중 | '54~'59 | ‘60~’69 | ‘70 |
---|---|---|---|---|---|---|
사망 | 1,173 | 9 | 152 | 12 | 870 | 130 |
안장 | 1,173 | - | - | - | 975 | 198 |
안장배경
한강전투(1950년 6월28일 ~ 7월3일)
국군이 북한군 남진을 막기 위해 28일 새벽 2시30분에서 4시 사이에 한강 방어선 구간의 교량들을 폭파했으나 폭약이 부족해 경부선 철교와 경인 상행선 철교는 건재한 상태였다. 29일에는 미군 B-26 폭격기 편대가 철교를 폭격했으나 성과가 없었다.
맥아더 방문 하루 전인 28일. 기습공격 나흘만에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 제1군단은 예상 외로 서울에서 3일간 제2군단이 춘천전투에서 승리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북한은 우선 당시 제1군단 사령와 직할대를 포함한 4개 보병사단과 1개 전차여단을 한강변에 배치했다. 하지만 춘천전투의 패배 소식과 26일부터 한국전선에 출현하기 시작한 미 극동군 사령부 산하의 해군과 공군은 북한군을 점차 초조하게 만들었다.
1950년6월29일 북한군이 서울 함락 당한 후 한강 방어를 위해 설치된 시흥지구 전투사령관 김홍일 소장은 시흥지구 전투사령부에 배속된 3개 사단으로 제7사단은 노량진에, 수도사단은 영등포 지역에 배치했으며 제2사단, 제3사단, 제5사단의 병력은 한강 남쪽 강변을 잇는 선에 진지를 구축하고 방어 준비했다.
29일 오후 북한군이 한강 도하작전을 개시한 초반에는 도하장비 부족으로 북한군은 한강변에서 우선 포격을 통해 국군에게 손실을 입히려고 공방을 거듭했지만 결국 북한군은 방어진지를 돌파하지 못하고 7월2일 작전계획을 변경했다.
3일 새벽 북한군 제4사단의 T-34 전차 4대가 경부선 철교에 모습을 드러내자 국군은 모든 화력을 총동원해 저항했지만 전차는 미동조차 하지 않고 단숨에 영등포, 인천으로 진출했다.
시흥지구 전투사령부는 한강 방어선을 지탱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병력은 안양, 수원 등으로 후퇴했다.
5일간 한강전투를 통해 아군은 후퇴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고 미 지상군이 참전할 시간도 벌어 7월1일 일본에 있던 미 제24사단 스미스 특수임무부대가 부산에 안전하게 상륙해 전투를 준비했다.
1.21사태
1968. 1. 21. 북한의 특수부대인 124군부대 소속 31명이 청와대 습격과 정부요인 암살지령을 받고, 한국군의 복장과 수류탄 및 기관단총으로 무장하고 야간을 이용하여 휴전선을 넘어 수도권까지 잠입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세검정고개의 자하문을 통과하려다 비상근무 중이던 경찰의 불심검문을 받고 정체가 드러나자 검문경찰들에게 수류탄을 던지고 기관단총을 무차별 난사하는 한편, 그곳을 지나던 시내버스에도 수류탄을 던져 귀가하던 많은 시민들을 살상하였다. 군⦁경은 즉시 비상경계태세를 확립하고 현장으로 출동하여, 28명을 사살하고 1명을 생포하였다.
김광율 소령[54묘역 6판 1809호]
1966년 8월 8일 부비츄렙이 요란한 폭음을 내며 갑자기 폭발하자. 그 순간 간첩침투의 예고임을 직감한 경계병들이 집중사격을 가했고, 간첩 1명 사살, 1명 부상 그 주변엔 3개의 배낭과 기관총 등이 발견되어 3인조 무장간첩단으로 판단, 나머지 한 명을 생포하기 위한 수색전에 들어갔다.
적을 반드시 생포하겠다는 일념으로 작전을 지휘하던 중 도주 간첩이 던진 수류탄에 의해 얼굴 등에 파편상을 입었다. 그러나 응급치료도 미룬 채 포위망을 좁혀 가던 중 수색 5시간여 만에 적을 발견하고 투항할 것을 종용했지만 적이 사격해 오자 선두에서 교전하다 적의 총탄에 맞아 산화했다.
기타
ㅇ 1968년 11월 25일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창리 대간첩 작전임무 수행 중 적과 교전, 적을 생포하기 위해 육박전을 전개하다 적이 던진 수류탄에 전사(상사 강오용) 및 97연대 요원 6명 전사
ㅇ 1969년 04월 21일 제15사단 포병 제26대대 2포대 숙영지 약 25⁰의 경사지에서 차량의 시동이 꺼져 급부레이크를 밟았으나, 차량 후진 전복되고 탑승자 18명 중 3명 사망
ㅇ 1969.04.22. 제20사단 제61연대 진지공사 작업을 마치고 부대로 이동 중 전방 7m 지점에 자전거를 피해 도로변으로 운행, 도로변의 지면의 약화로 높이 3m 약 30⁰ 경사지에서 전복 9명 순직
ㅇ 1969.05.05. 제3연대 "69년도 영구축성공사계획" 작전에 의거 강원 화천에서 숙영 중 산사태로 개인천막 매몰 6명 순직
ㅇ 1969.06.06. 강원 원주시에 위치한 제235수자대 823중대 내무반에서 취침 중 내무반장이 불시에 기상 내부반에 보관 중이던 칼빈 소총으로 27발을 난사하여 5명이 순직
ㅇ 1970.03.01.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제6사단 포병 76대대에서 취침 중 발생한 화재사고로 2명 순직
ㅇ 1969.12.19. 강원도 인제군 제505병기단 무기고에서 대전차지뢰 처리계획에 의거 차량에 적재도중 폭발하여 3명이 순직
추모의글
육군상사 강오용(32520)
자유수호를 위하여 그 젊음을 산화한 영혼이여 고이 잠드소서
육군병장 이삼길(32561)
장하다 삼길아 ! 얼마나 조국을 사랑했기에 청춘과 부모형제를 버리고 장렬한 순직을 하였나 너의 넋은 청사에 빛나리
육군일병 강대원(32695)
조국의 진통을 혼자 대신한 너의 젊은 넋이여 이 어머니를 다시 만나는 날까지 고이고이 잠들어라
육군일병 이해신(32855)
거치른 세파에서 우리 모두 끝없는 형제애 속에 같이 흘러온 네가 이곳에서 먼저 말없이 잠들게 되다니 통곡을 한다고 네가 다시 돌아올 리 없지만 이 설움이 풀릴 길이 없구나 해신아 우리 무두가 저세상에서 다시 모일 때까지 고이고이 잠들어라
육군하사 김용구(32907)
사랑하는 내 아들아! 못다 핀 젊음, 끓는 피 장하다 조국위해 장렬히 산화였구나 용구야 이 땅에서 못 다한 사랑 하늘나라에서 이루자꾸나
육군하사 이도범(32963)
사랑하는 도범아! 다정히 속삭이던 너와의 대화는 나의 귓전에 아직도 남아 있는데 넌 가고 없구나 못 다한 젊은 꿈은 어떻게 하고 외로운 엄마 두고 정녕 떠나지던야
육군하사 채명식(33041)
나라에 충성으로 목숨 바친 우리 명식아 한 가지 피는 꽃도 봄을 찾듯이 혼자 있는 너에 엄마 이승에 매친 한 죽어서 같이 살기 기약 하노라
육군일병 김의식(33112)
고은 빛을 남기고 가신님 그 모습 영원히 가슴속에 맺혀 여기 영혼을 잠재우소서
육군일병 엄태현(33120)
못 다 핀 꽃 한 송이 내 동생 있는 곳이 여기라네 아우야 이승에서 못 핀 꽃 다음생애에 활짝 피어 다시 태어나라
육군병장 백준환(33188)
조국과 민족을 위해 숭고한 얼을 바친 한 송이 무궁화가 고이 잠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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