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번호
- 5271
제 18 묘역 소개
- 작성일
- 2018.05.15
- 수정일
- 2022.02.08
- 작성자
- 현충원
- 조회수
- 1333
개요 및 안장 현황
제18묘역은 6.25 전사⦁순직자를 모시기 위해 조성된 묘역으로 장교(1위), 부사관(134위), 육군사병(963위) 등 총 1,097위가 안장되어 있다.
연도 | 계 | 6・25전쟁중 | '54~'59 | ‘60~’69 | 기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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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097 | 1,007 | 3 | 1 | 86 |
안장 | 1,097 | 1,093 | 1 | 1 | 2 |
안장배경
금화전투
미국 8군의 공산군 공세에 대한 제한된 공격작전의 일환으로 저격능선을 공격하게 된 대한민국 2사단 제17연대, 제31연대, 제32연대와 배속된 제30연대, 제37연대가 16개 포병 대대의 포격 지원 아래 1952년 10월 14일 5시 정각에 공격을 개시하여 중국 인민해방군 7개 연대(제133연대, 제143연대, 제135연대, 제86연대, 제1387연대, 제92연대, 제106연대)가 11월 24일까지 6주간의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진지를 사수했다.
저격능선 전투(狙擊稜綫戰鬪, 영어: Battle of Sniper ridge)는 한국 전쟁이 고지전으로 변하여 교착되었던 1952년에 중부전선의 김화(현재의 철원군 김화읍 주변)지역에 배치되어 있던 대한민국 2보병사단이 중공군 15 군에 맞서, 주저항선 전방의 전초진지를 빼앗기 위한 공방전을 벌인 지역으로 김화 북방 7Km지점에 위치한 저격능선으로서 철의 삼각지대 중심부에 자리잡은 오성산에서 우단의 김화지역으로 뻗어내린 여러 능선 가운데 남대천 부근에 솟아오른 돌출된 능선이다. 그 해발고도는 590m정도이고 능선의 크기는 1㎢정도의 장방형 능선이다.
저격능선이란 이름은 1951년 10월. 당시 노매드(Nomad)선을 목표로 진격작전을 전개한 미국 25 보병 사단이 김화지역으로 진출하여 중공군 2군과 대치할 때 중공군이 538고지로 진출한 미군을 저격하여 상당한 피해를 입고 미군 병사들은 이 무명능선을 가리켜 스나이퍼 리지'라 불러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다부동전투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다부동 일대는 북서쪽은 유학산이 북쪽을 향하여 횡격실을 이루고 동쪽에는 가장 높은 가산(902m)이 있어 이곳이 적에 손에 들어가 10㎞ 남쪽의 도덕산(660m)까지 철수한다면 대구가 적 포병 사격의 사정권에 들어갈 수 있는 대구 방어에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이다.
국군 제1사단은 다부동 일대 주저항선에서 대구를 공격하려는 북한군 3개 사단을 상대로 피아간에 유학산전투, 328고지전투, 837고지전투, 328고지전투, 674고지전투, 볼링장전투, 가산산성전투 등 낙동강 방어뿐만 아니라 6.25전쟁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를 벌어졌다.
국군 제1사단은 미8군사령부의 지원을 받아 낙동강 방어선 구축 이래 북한군의 8월 공세와 9월 공세를 방어하고 이를 격파하여 위기에 빠진 전황을 타개하였다.
다부동전투는 1950년 8월 1일부터 9월 24일까지 55일간이나 계속되었으며, 북한군 2만 4천여명과 국군 1만여명이 죽거나 다치는 인명피해를 냈다. 그 결과 당시 투입된 북한군에게도 치명적인 패배를 안겨주어 전세를 역전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6.25전쟁사에서 다부동 일원에서 벌어진 전투는 국군의 위대한 전투로 기록되고 있다.
현재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 유학산 기슭에는 다부동전투에서 전사한 전몰군경을 기리고 전쟁실상을 보여주기 위해 1981년 11월 다부동전적기념관이 건립되어 있다.
유정무 하사[18묘역 8판 4915호]
1967.7.28. 01:07분경 상황근무중 적이 침입했다는 보초로부터 보고를 받고 내무반에 비상을 발령하고 최초 경계를 위해 밖으로 뛰어 나가는 순간 적 수류탄 여러 발이 폭발하여 전사
추모의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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