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번호
- 5263
제 26 묘역 소개
- 작성일
- 2018.05.15
- 수정일
- 2022.02.08
- 작성자
- 현충원
- 조회수
- 1498
개요 및 안장 현황
제26묘역은 베트남전에서 전사하신 분들을 모시기 위해 조성된 묘역으로 ‘67 짜빈동 전투에서 중대병력으로 월맹군 2개연대의 야간 기습공격을 격퇴시킨 청룡부대 장병 16위(3판 656∼697) 등 총 1,482여위가 안장되어 있다. 농협중앙회와 자매결연을 체결하여 묘역을 관리하고 있다.
연도 | 계 | ‘60~’69 |
---|---|---|
사망 | 1,482 | 1,482 |
안장 | 1,482 | 1,482 |
안장배경
베트남전 중대급 부대의 최대 승전사례인 ‘짜빈동전투’
짜빈동전투는 1967년 2월 14일과 15일 사이에 베트남 짜빈동에서 청룡부대(제2해병여단 11중대)가 북베트남군과 펼쳐진 전투로 중대급 부대의 최대 승전사례로 월남전의 기적으로 불린다.
베트남전쟁에 파병된 대한민국 해병 제1사단 제2연대 11중대는1966년 8월 추라이지구 짜빈동(Tra Binh Dong)에 배치되어 야간기습에 대비 사주 경계를 강화하고 48시간 이상 자체 방어할 수 있도록 탄약과 식량 등을 비축한 전술기지를 구축하였다.
북베트남군(월맹군)이 추라이 공군기지와 청룡부대 포병대대의 포진지를 파괴하기 위한 작전을 세웠다, 포진지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짜빈동에 주둔한 11중대를 먼저 공략해야만 하였다. 구정(舊正) 휴전 기간이 끝난 1967년 2월 14일 북베트남군 제2사단 제1연대 제60대대와 제21연대 제40대대, 쾅나이성 게릴라 1개 대대 등 2400여 명이 짜빈동 부근에 집결하였다.
2월 15일 새벽 4시경부터2400명의 북베트남군은 포병의 지원을 받으며 인해전술로 파상공격을 해왔다. 이에 맞서는 제11중대는 장교 10명과 사병 284명 등 총294명에 불과해 여단에서 헬리콥터로 병력을 지원하려 하였으나 중대장 정경진 대위는 적에게 포병 화력을 집중하는 상황인데 헬리콥터로 병력을 지원하려면 포사격을 중지해야 하고 그 틈에 적이 진지로 돌입할 것이라고 거절하였다. 제11중대는 포병 화력을 집중하면서 근접전투와 백병전을 펼쳐 확인사살 243명, 포로 2명, 체코제 화염방사기 3문, 대전차 유탄발사기 5문, 기관총 2정, M15소총 11정, M56자동소총 17정, 각종 실탄 6000여발, TNT 100개, 탄창 52개, 기관단총 7정 등을 노획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아군은 전사 15명, 부상 33명의 희생을 치렀다. 제11중대 장병 전원은 일계급 특진을 하였고, 중대장과 1소대장 신원배 소위는 태극무공훈장을 받았다. 이 전투는 1개 중대 병력으로 연대 규모의 적을 물리침으로써 한국 해병의 용맹을 떨쳤을 뿐 아니라, 맹호부대의 두꼬전투와 더불어 한국군 중대전술기지의 전략적·전술적 가치를 확인한 전투로 평가받는다.
지덕칠 중사[26묘역 3판 680호]
1967. 2. 1 추라이 전투에서 위생하사관으로서 베트콩의 포위망을 뚫기 위해 교전하다 부상당한 제1대대 제2중대 제3소대원(3명)의 응급처치와 구출작전을 완수하고 본인은 어깨와 다리에 관통상을 입었지만 부상을 돌보지 않고 마지막까지 싸우다 전사했다.
이상득 하사[26묘역 3판 708호]
1968. 3. 8 베트남 오작교작전 수행중 적의 토굴을 발견하고 조심스럽게 탐색하며 굴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적이 던진 수류탄을 발견했다. 재빨리 수류탄을 덮쳐 동료를 구한 뒤 자신은 전사하였다.
기타
ㅇ 1967.10.24. 13:15 닌호아에 적이 투입되었다는 정보가 입수되어 BP 967 789 지점에 포위망 형성하고 작전중 적의 사격으로 전사
ㅇ 1967.11.7. 13:40 작전지역에 투입 포위망을 형성하던 중 BP 961844 지점에서 적의 사격으로 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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