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번호
- 5259
제 30 묘역 소개
- 작성일
- 2018.05.14
- 수정일
- 2022.02.08
- 작성자
- 현충원
- 조회수
- 1512
개요 및 안장 현황
제30묘역은 6.25전쟁중 전사․순직하신 분들을 모시기 위해 조성된 묘역으로 이만우 하사, 이천우 이등중사 등 총 1,239위가 안장되어 있다.
연도 | 계 | '50년 이전 | 6・25전쟁중 | '54~'59 | ‘60~’69 | ‘70~’79 | ‘11 | 기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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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236 | 1 | 988 | 83 | - | 1 | - | 163 |
안장 | 1,236 | 1 | - | - | 1,227 | - | 1 | 7 |
안장배경
금화전투
미국 8군의 공산군 공세에 대한 제한된 공격작전의 일환으로 저격능선을 공격하게 된 대한민국 2사단 제17연대, 제31연대, 제32연대와 배속된 제30연대, 제37연대가 16개 포병 대대의 포격 지원 아래 1952년 10월 14일 5시 정각에 공격을 개시하여 중국 인민해방군 7개 연대(제133연대, 제143연대, 제135연대, 제86연대, 제1387연대, 제92연대, 제106연대)가 11월 24일까지 6주간의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진지를 사수했다.
저격능선 전투(狙擊稜綫戰鬪, 영어: Battle of Sniper ridge)는 한국 전쟁이 고지전으로 변하여 교착되었던 1952년에 중부전선의 김화(현재의 철원군 김화읍 주변)지역에 배치되어 있던 대한민국 2보병사단이 중공군 15 군에 맞서, 주저항선 전방의 전초진지를 빼앗기 위한 공방전을 벌인 지역으로 김화 북방 7Km지점에 위치한 저격능선으로서 철의 삼각지대 중심부에 자리잡은 오성산에서 우단의 김화지역으로 뻗어내린 여러 능선 가운데 남대천 부근에 솟아오른 돌출된 능선이다. 그 해발고도는 590m정도이고 능선의 크기는 1㎢정도의 장방형 능선이다.
저격능선이란 이름은 1951년 10월. 당시 노매드(Nomad)선을 목표로 진격작전을 전개한 미국 25 보병 사단이 김화지역으로 진출하여 중공군 2군과 대치할 때 중공군이 538고지로 진출한 미군을 저격하여 상당한 피해를 입고 미군 병사들은 이 무명능선을 가리켜 스나이퍼 리지'라 불러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호국형제의 묘(하사 이만우 26549호, 이등중사 이천우 39591호)
6.25 전쟁 당시 오직 구국의 일념으로 사랑하는 홀어머니를 뒤로한 채 각각 정든 고향집을 떠났던 두 형제가 전사한 지 60년 만에 다시 만나 이곳에 함께 잠들어 있다.
경북 청도에서 태어난 이들 형제는 낙동강 전투가 한창이던 1950년 8월 형님(故 하사 이만우)이 입대한 지 한 달만에 당시 18세이던 동생(故 이등중사 이천우) 또한 형님의 뒤를 이어 자원입대하였다. 각각 1사단과 7사단 소속으로 서울 수복작전에 이어 북진의 선봉에 서서 평양탈환작전 등 주요 전투에 참가하여 혁혁한 무공을 세운 형제는 안타깝게도 이듬해인 1951년 5월 7일 고양지구전투에서 형님이 전사(화랑무공훈장 수훈)하고 같은 해 9월 25일 동생마저 19세 꽃다운 나이에 강원도 양구의 백석산 전투에서 장렬하게 전사(화랑무공훈장 2회 수훈)하였고, 1년 남짓 참전기간 중 이들이 군화신고 걸었던 장정은 약 9천리(3,400km)에 달했다.
다행히도 형님은 1960년 5월 이곳 현충원 묘역에 모셔졌으나, 아쉽게도 동생은 당시 긴박했던 전투상황에서 미처 수습되지 못한 채 긴 세월을 이름 모를 들꽃과 함께 전투현장에 홀로 남겨지게 되었다. 2010년 10월 뒤늦게나마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 의해 동생의 유해가 발굴되어 신원이 확인되고 형님 곁에 안장됨으로써 비로소 함께 형제애를 나누며 영면할 수 있게 되었다.
3개의 화랑무공훈장에 빛나는 호국용사 故 이만우, 이천우 형제! 님들의 고귀한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았으며 나라사랑의 표상으로 우리들 가슴 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육군일병 김옥상[30묘역 26326호]
1950년 11월1일부터 7일까지 개천-비호산 부근 전투에 참전, 병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결사적인 육박전을 전개하여 다수의 적을 살상하고 자신은 1950년 11월 6일 장렬히 최후를 맞이하였다.
추모의글
호국형제의 묘(하사 이만우 26549호, 이등중사 이천우 39591호)
쪽빛보다 더 푸르른 젊음과 소중한 생명 나라위해 장렬히 바친 형제여!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큰 무공 세우시고 쓰러졌건만 찬 서리 비비람 속에 동생 홀로 남겨진지 어언 60년...... 고귀한 희생. 호국의 기운되어 차고 넘칩니다. 이제는 조국의 품 안에서 함께하며 편히 쉬소서. 우리는 님들을 가슴에 묻은 채 ‘호국의 형제’라 부르오리다.
묘역위치 : 25539호/육군상병 지태삼
- 유월에 떨어진 꽃자리 - 서울의 서달산 고운햇살 끌어 모으고 도도히 흐르는 한강을 끌어 안는다. ‘선대의 나라님도 모신 곳’ 별들도 무궁화도 다이아몬드도 병사들도, 조국위해 가신님들 이변의 계절도 아닌데 칼바람 북풍에 떨어진 꽃님들 이름표만 즐비하게 달고 있는 동작동 현충원 늉* 하나 없이 천년 집을 지키고 있네 이젠 임 곁에 누님명패 다복이 쌓인 명주실 사연 잊어버리고 원앙베개 둘이 베고 고운잠 드셔요 파릇파릇한 방석에 무릎 꿇고 침묵의 시간, 증류수에 두 손 모으니 백합 두 송이 쓴웃음 짓고 있네 - 누님 생각 - 단풍이 냇물을 끌고 가는 길섶에 아담한 귀들집 토속 음식점 간판 걸고 살아온 누님 임은 6.25때 전사하고 씨앗은 아비 따라 가버린 둥지 흐린 달빛 별무리 익어 갈 때 한숨짓고 속눈물 흘리면서 외로움 삭이던 누님 둥근달 떠오를 때 응급실에서 이슬 맺힌 눈으로 날숨도 힘에 겨워 내 손목 붙잡고 우리 육남매가 너만이 남는다며 사르라지는 달빛 따라 가버린 누님은 임 그리든 귀들집 허공 떠돌아다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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