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번호
- 5241
제 48 묘역 소개
- 작성일
- 2018.05.14
- 수정일
- 2022.02.08
- 작성자
- 현충원
- 조회수
- 1216
개요 및 안장 현황
제48묘역은 6.25전쟁중 전사자와 월남전에서 전사하신 분들을 모시기 위해 조성된 묘역으로 월남전 장병 229위 등 총1,013위가 안장되어 있다.
연도 | 계 | 6・25전쟁중 | '54~'59 | ‘60~’69 | 기타 |
---|---|---|---|---|---|
사망 | 1,013 | 761 | 11 | 234 | 7 |
안장 | 1,013 | - | 637 | 375 | 1 |
안장배경
문산전투
문산 전투는 한국 전쟁 초기 청단(靑丹), 연백(延白), 개성, 고랑포(高浪浦) 일대에서 한국군 제 1사단이 제203전차연대로 증강된 북한군 제1 및 제6사단과 맞서 싸운 방어전투이다.
청단-개성 일대에 배치된 제 12연대는 초전에 분산되어 영정포에서 한강 하구를 도하하여 김포 반도(金浦半島)와 문산리로 철수하였으며 38도 분계선의 대원리(大院里)-원당동(元堂洞)간을 방어하던 제13연대 3대대 또한 임진강 남쪽으로 분산 철수하였다. 한편 사단 예비로서 수색에 주둔하고 있던 제 11연대는 6월 25일 오후 문산으로 이동하는 즉시 주저항선을 점령하였고, 제 1연대는 그 우측방의 파평산(坡平山) 방어진지에 투입되었다.
제11연대는 6월 25일 08:30에 출동하여 11:00~15:00 사이에 열차를 이용, 문산으로 이동하였으나 병력은 980명에 지나지 않았다. 적전리(赤田里)에 전술지휘소를 설치한 제 11연대는 임진강철교 부근 마정리(馬井里)의 1번 도로 좌우측에 제1대대를, 임진강 나루터 남쪽에 제 2대대를 배치하고 제3대대를 예비로 적전리에 집결 보유하였다. 이렇듯 연대가 방어배치하는 동안에 휴가, 외출 장병이 줄을 이어 귀대하였으므로 연대병력은 1,500명으로 증가되었다. 제11연대장은 개성지구의 제 12연대 일부 병력이 임진강철교를 통해 철수한 상황을 확인한 후 사단장에게 철교 폭파를 건의하여 사단공병이 폭약을 장전하고 점화하였지만 불발로 그쳐 실패하고 말았다.
적은 애당초 남침계획을 수립하면서 아군이 반드시 임진강철교를 폭파할 것이라고 판단한 듯 전차를 1번 도로상에는 투입하지 않았다. 아군이 주저항선을 거의 점령했을 때인 17:00경 철교 북쪽에서 전술행군대형으로 1번 도로를 따라 남하하는 대규모의 북한군과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졌으며 적은 임진강철교 부근에서 격퇴되었다.
그 뒤에도 적 15연대는 수차에 걸쳐 임진강철교를 확보하기 위한 공격을 반복하였으나 매번 실패하자 공격을 중단하고 아군이 철교를 폭파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데 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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