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대통령 묘소
김영삼 대통령 묘역의 면적은 480m²로, 평생을 조국의 민주화에 몸 바친 김영삼 대통령은 제14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여 최초의 문민정부를 출범시켰으며, 공직자 재산 공개법, 금융실명제 등 강력한 개혁 정책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정치·경제 민주화를 실현하였다.
김영삼 대통령은 2015년 11월 22일 서울에서 서거하였으며, 국가장으로 11월 26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대통령묘비
정면
대통령김영삼의묘
후면
김영삼 金泳三 대통령은 1928년 음력 12월 4일 경상남도 거제시 장목면 외포리 대계마을에서 아버지 洪祚 공과 어머니 박부련 朴富連 여사의 1남 5녀 중 맏이로 태어났다 金寧 김씨 충정공 忠貞公파 28세손이며 종교는 기독교 아호는 거산 巨山이다 1951년 손명순 孫命順여사와 결혼했다 1954년 제3대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 9선 의원에 최다선 원내총무 여러 차례의 정당 대표 그리고 대통령을 역임하면서 이 땅에 반드시 민주주의를 실현해내고자 하는 신념 하나로 일생을 오직 대도무문 大道無門의 삶을 살았다 자유당정권의 사사오입 개헌에 반대하여 야당의 길에 들어섰고 1969년에는 40대기수론을 제창하여 한국 정당사상 최초로 대통령후보 경선을 선도하고 결과에 승복하는 아름다운 모범을 보였다 1974년과 1979년에는 선명을 기치로 신민당 총재로 당선되어 유신정권에 결연히 맞서 마침내 그 유신시대를 종식시켰다 1983년 23일에 걸친 생명을 건 단식투쟁을 전개 민주화에 대한 국내외의 뜨거운 호응을 불러 일으켜 이를 바탕으로 민주산악회와 민주화추진협의회를 결성하고 신한민주당을 창당하여 2·12총선 혁명을 이끌었으며 1987년 6월 민주대항쟁의 정치적 중심에 서서 이 땅의 민주화를 쟁취해냈다
1990년 3당 통합을 거쳐 1992년 대통령에 당선 1993년 2월 25일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에 취임함으로써 역사적인 문민민주주의 시대를 열었다 30여년에 걸친 군사정치 문화를 청산하고 변화와 개혁을 통해 문민민주주의에로의 위대한 전환과 공고화를 이루어냈으니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문민정부로부터 비로소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퇴임 후에도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의 통일 그리고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노심초사하시다가 화합과 통합의 유지를 남기시고 2015년 11월 22일 영면에 드시니 향년 88세였다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국민과 온 세계 자유민들의 애도 속에 국가장으로 이곳 현충원에 모시니 거룩한 혼은 오늘도 나라와 겨레와 함께 하고 계신다
좌측면
- 영부인
- 손명순
- 아들
- 은철
- 현철
- 며느리
- 황경미
- 김정현
- 손주
- 성민 진
- 인덕 인영
- 딸
- 혜영
- 혜경
- 혜숙
- 사위
- 이창해
- 송영삼
- 이병로
- 손주
- 근우 현주
- 여진 수진
- 혜리
우측면
- 1951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철학과 졸업
- 1954 제 3대 최연소 국회의원 당선
- 5~10·13·14대 국회의원 9선 역임
- 1965~9 사사오입 개헌에 반대 자유당 탈당
- 1970 40대기수론 대통령후보지명전 출마
- 1974 신민당 최연소 총재 선출
- 1979 신민당 총재 재선출
- 1979 총재직무정지 국회의원직 강제제명
- 1980 신군부에 의해 가택연금
- 1981 민주산악회 발족
- 1983 민주화유구 생명을 건 23일 단식투쟁
- 1984 민주화추진협의회 결성 공동의장
- 1985 신한민주당 창당 2·12총선 선거혁명
- 1987 통일민주당 총재 6월 민주항쟁 주도
- 1987 대통령선거 출마
- 1989 한국 정치인 최초로 소련 방문
- 1990 민주 민정 공화 3당 통합 선언
- 1992 민주자유당 후보로 제14대 대통령 당선
- 1993~8 대한민국 대통령 재임
- 2004 북한민주화위원회 명예위원장
김영삼 민주주의 기념비
전면
민주화 투쟁의 과정에서 나는 항상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서 싸웠다
나는 또한 부끄러운 타협을 한 적이 없다
민주주의를 반드시 실현해 내고자 하는 내 신념을 한 번도 꺽어 본 적이 없었다
2000.1 회고록이 김영삼이가 목숨이 끊어지지 않는 한 바른 길 정의에 입각한 일 진리를 위한 길 자유를 위하는 일이면 싸우렵니다 싸우다가 쓰러질지언정 싸우렵니다
1969.6.21. 초산테러 국회 신상발언이제 민주주의는 개막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새벽이 돌아왔습니다 아무리 새벽을 알리는 닭의 목을 비틀지라도 민주주의의 새벽은 오고 있습니다
1979.5.30. 신민당 총재 수락연설어떠한 탄압이 있다 하더라도 민주주의를 위한 나의 신념과 소신은 바꿀 수 없습니다 나는 잠시 살기 위해 영원히 죽는 길을 택하지 않고 잠시 죽는 것 같지만 영원히 살 길을 선택할 것입니다
1979.10.4. 국회의원 제명 규탄나에 대한 어떠한 소식이 들리더라도 그것에 연연하거나 슬퍼하지 말고 오히려 민주화에 대한 우리 국민의 뜨거운 열정과 확고한 열의를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1983.5.18. 단식돌입 성명오늘 우리는 그렇게도 애타게 바라던 문민 민주주의 시대를 열기 위하여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오늘을 맞이하기 위하여 30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마침내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부를 이 땅에 세웠습니다
1993.2.25. 대통령 취임사드디어 우리는 금융실명제를 실시합니다 이 시간 이후 모든 금융거래는 실명으로만 이루어집니다 금융실명제는 개혁중의 개혁이요 우리 시대의 개혁 중추이자 핵심입니다
1993.8.12. 금융실명제 특별담화
후면
- 김영삼 대통령은 야당 시절 국민의 자유와
기본적 인권 그리고 이 나라 민주주의를
지켜주는 방패요 산성이었으며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여서는
30여년에 걸친 군사정치문화를 청산하고
문민민주주의에로의 위대한 전환을 이룩한
한국 민주주의의 자랑스러운 지도자였다
김영삼 대통령은 군에 대한 문민통제를
확립해 한국의 민주주의를 반석위에
올려놓았으며 정치개혁과 지방자치의 전면
실시를 통해 한국 민주주의를 제도적으로
완결했다 재산공개와 정치자금 근절 등
위로부터의 개혁을 솔선수범하고
금융실명제와 역사바로세우기 세계화
정보화 등 각종 개혁을 통해 한국
민주주의를 사회 전 부문으로 확산시켰다 -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 민주화와 변화와
개혁은 세계 민주주의의 발전에 커다란
본보기가 되었으며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 한류가 온 세계로 뻗쳐
흐르는 전기가 되었다
김영삼 대통령이 걸어온 대도무문의 길과
한국 민주주의에의 업적을 기리고 한국
민주주의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는 전
국민의 뜻을 담아 여기에 이 비를 세운다2016년 5월 26일
글 김 정 남
글씨 신 두 영
-
좌측면
民主主義
巨山 金 泳 三 -
우측면
大道無門
大統領 金 泳 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