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번호
5284

제 5 묘역 소개

작성일
2018.05.16
수정일
2022.02.08
작성자
현충원
조회수
2293

개요 및 안장 현황

제5묘역은 장병묘역에 경찰관묘역을 조성한 대표적 묘역으로 육군사병 62위, 경찰간부 150, 경찰비간부 239위가 1~4판으로 나뉘어 총 451여위가 모셔져 있다.

연도 '50년 이전 6・25전쟁중 '54~'59 ‘60~’69 ‘70~’79 ‘80~’89 '90~99 기타
사망 451 38 262 2 37 20 84 4 4
안장 451 - - 34 91 155 165 5 1

안장배경

정종수 경사[2판 57호]

1968. 1. 21. 북한의 특수부대인 124군부대 소속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여 정부요인을 암살하라는 지령을 받고 한국군의 복장과 수류탄 및 기관단총으로 무장하고 야간을 이용하여 휴전선을 넘어 수도권까지 잠입하였다. 이들이 세검정고개의 자하문을 통과하려할 때 비상근무 중이던 경찰의 불심검문을 받고 정체가 드러나자 검문경찰들에게 수류탄을 던지고 기관단총을 무차별 난사하는 한편, 그곳을 지나던 시내버스에도 수류탄을 던져 귀가하던 많은 시민들을 살상하였다. 군⦁경은 즉시 비상경계태세를 확립하고 현장으로 출동하여 28명을 사살하고 1명을 생포하였다.

김해수 경감[3판 116호]

1950년 7월 8일 영월읍 화력발전소를 사수하라는 명령을 받고 48명의 결사대를 조직하여 경무장 후 부대 이동 중 인민군 차량부대와 치열한 전투로 적 73명을 사살하고 김해수 대장 등 23명이 전사하였다. 이들 전사자 23명은 1960년 10월 영월군 상동읍 합동묘지에 안장하였으며 1980년에 새롭게 단장했다, 매년 7월 8일에는 강원지방 경찰청장이 추모행사를 갖고 있다.

주순철 경감[3판 207호]

1950년 7월 29일, 곡성군 압록교 근방에서 북한군 603기갑연대가 야영 중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포위망을 형성하여 선제공격으로 4시간만에 사살 52명, 생포 3명, 트럭 등 물자 80여점을 노획하는 등 혁혁한 전과를 세웠으나 1950년 8월 6일 북한군 주력부대의 기습공격을 받아 치열한 격전 끝에 48명의 전우와 함께 주순철 경감이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김기옥 경위[3판 214호]

1951년 9월 19일 전남 구례에서 토벌작전 중 전사

계용훈 경위[3판 106호]

최초 경찰 안장자로 무장간첩과 교전 중 전사

추모의글

치안감 양동회(4판1호)

“꺼지지 않는 불꽃을 심고 세월이 가고 역사가 가면 당신 얼굴 잊으리까. 푸르른 삶에 학처럼 희어 홀로 누워서 온화한 당신 향기 잊으리까 이제 당신의 정신 조국에 남아 영원한 사랑을 일깨우리니 사랑하는 아빠! 당신은 떠나도 그 염원은 우리 가슴에 꺼지지 않는 불꽃을 심고 기적처럼 다시 살아나리라“

경찰충혼탑 헌시(이은상)

여기는 우리들의 조국 지나간 한때 어둠 속에 잠겼다가 자유를 되찾은 광복된 나라 온갖 방해 물리치고 나라를 세우려고 고귀한 청춘의 피를 뿌린 이 나라 건국 경찰들 우리는 그들을 잊지 못한다 또 다시 닥쳐온 고난과 시련 민족을 반역한 북한 공산군 잔악한 남침으로 일으킨 전쟁 총탄 속에서 조국을 구하려고 값비싼 청춘의 피를 뿌린 이 나라 구국 경찰들 우리는 그들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도 밤낮을 이어 나라를 위해 오직 자유 평화 정의를 지켜 겨레의 안전을 보살피다 엄숙하고 거록한 사명 앞에 순결한 청춘의 피를 뿌린 이 나라 호국 경찰들 우리는 그들을 잊지 못한다 여기는 순국한 님들 잠드신 곳 장미꽃보다 더 아름답던 청춘 그 청춘 그대로 누워 계신 곳 육신은 풀끝의 이슬처럼 잠깐 왔다 갔을 지라도 뜻과 이름 길이 여기 살아 계시리 강산과 역사와 함께 길이 사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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