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묘역은 장병묘역으로 조성되었으나 일부 경찰관묘역으로 사용되어 현재는 육군 838위, 해군 4위, 공군 1위, 경찰관 9위, 애청단원 및 종군자 10위, 군무원 1위, 일반유공자 1위 등 총 864위가 안장되어 있는 묘역이다.
연도 | 계 | '50년 이전 | 6・25전쟁중 | '54~'59 | ‘60~’69 | ‘70~’79 | ‘80~’89 | 기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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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864 | 2 | 64 | 7 | 8 | 729 | 53 | 1 |
안장 | 864 | - | - | 2 | - | 795 | 62 | 5 |
1950년 7월 19일 대전지역 방어작전중 적에게 포로가 된 월리엄 F 딘 미 24사단장을 구출하는 특공작전에 자원하여 증기기관차 미카 129를 타고 대전 근방 세천터널에서 순직하였다. 그는 죽을 당시에도 운전대를 놓지 않을 정도로 책임감이 강하였다.
6.25전쟁 당시 인천 상륙작전과 서울탈환작전에 참여하여 1950년 9월 27일 06시 10분 해병 제 2대대 6중대 1소대 선임하사(당시 이등병조)로서 소대장 박정모 소위, 소대원 김칠용, 최국방과 함께 총탄이 빗발치는 중에도 서울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하였다. 이 공로로 미국 동성훈장과 금성충무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독립운동가 안용운 선생의 막내로 1949년 4월 해병대 창설에 참여하였으며 6.25전쟁 중인 8월 3일 ‘진동리전투’에서 ‘김성은 부대’ 7중대장으로서 적의 1개 정찰대대를 기습 공격하여 적 90여명을 살상하고 2대의 전차와 다수의 무기를 노획하는 큰 전과를 올렸다. 이후 8월 17일 ‘귀신 잡는 해병’ 이라는 별칭이 생긴 통영상륙작전에 참여하여 적 500여명을 사살했다. ‘귀신 잡는 해병’이라는 별칭은 통영에 상륙해 인민군들을 싹쓸이하다시피 소탕하자 뉴욕의 타임즈 종군기자(여기자) 히긴즈가 ‘그들은 악마도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라는 기사를 쓴 이후 귀신잡는 해병이라는 말이 생긴 것이라고 한다.